소통(疏通)
[명사] 상대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
소통이 어려운 경우는 대체로 소통의 상대가 나보다 약한 경우다.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다. 즉 소통이 어려운 게 아니라 사실은 약한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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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돌 지난 후 얼마 안됐을 때였어.
그러니까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때였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주변 사물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고 자연스레 호기심도 왕성해졌어.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새로운 걱정이 생기는 시기기도 했지.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만지다 다칠까봐.
특히 골치인 건 손잡이가 달린 각종 서랍과 수납장이었어. 집안에 있는 온갖 문을 열어 물건들을 다 끄집어내곤 했거든. 그 안에는 가위나 칼 그밖에 여러 날카로운 물건들도 있기때문에 당연히 걱정거리였던 거야. 그래서 그쯤되는 아이가 있는 집 대부분은 서랍을 테이프로 봉쇄하거나 수납장을 잠궈두지. 물건을 찾을 때마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아이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냉장고였어. 서랍과 수납장이 원천봉쇄되자 아이는 냉장고에 집착하기 시작했거든. 그렇다고 냉장고문을 잠글 수는 없었어. 딱히 잠금장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테이프로 감아둘 수도 없었지. 그러기엔 냉장고 문을 너무 자주 여니까. 그렇잖아. 세상 모든 문 중에 냉장고 문이 가장 자주 여닫히잖아. 끼니 때마다 여닫히는 건 당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하는 짓이 냉장고 문 열고 뭐 먹을 거 없나 뒤져보는 일이잖아. 5분 전에 이미 봤으면서 또 하고 있는 게 냉장고 문 열어보는 거란 말이지. 그래서 냉장고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아이가 하고싶은 대로 내버려뒀어. 하지만 잠시 뿐이었지. 왜냐면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장시간 두면 일단 전기세가 많이 나올 것 같아 신경이 씌였어. 또 안에 있는 음식들이 상하지 않을까도 걱정이었지. 결정적으로는 냉장고 냉기 때문에 아이가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아빠라면 당연히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던 거야.
일단은 말로 구슬려봤어. 논리정연하게. 물론 아무 소용없었지. 당연하잖아. 이제 갓 돌 지난 아기한테 공자왈 맹자왈 겁나 훌륭한 얘기를 떠든다고 해서 그걸 알아들을 리는 없는 거니까. 알아듣는다면 오히려 아기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거야.
거래도 해봤지. 사탕을 줄테니 이리 오렴 하고 냉장고에서 멀리 유인했다는 얘기야. 하지만 사탕을 물고는 다시 냉장고에 매달렸어. 환장할 노릇이었지.
결국 강제로 아이를 떼놓을 수밖에 없었어.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아빠의 완력을 이길 수는 없으니 결국 울고 불고 난리를 쳤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아빠가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니니까. 가정경제를 위해, 가족의 먹거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기의 건강을 위해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거야.
물론 떼어서 내려 놓으면 아기는 다시 냉장고에 매달렸지. 그럼 아빠는 더 큰 의무감과 동시에 이제는 분노까지 치밀었어. 아빠 마음을 너무 몰라주니까. 정말 한 대 세게 때려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어. 아빠의 정의가 아기에 대한 분노로 돌변하려던 순간이었던 거야. 다행히 실제 그러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때가 아빠가 된 후 처음 경험한 지독한 딜레마였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대체 어떻게 하면 아이를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빠의 이 공익적이면서도 거룩한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고민했던 거지. 정말 내가 울고 싶을 지경있어.
그런데 울고 싶을 지경인 건 아빠였지만 정작 서럽게 우는 건 아이였지. 그래서 문득 아이가 왜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건지 생각을 해봤어. 아이한테 감정이입을 해봤던 거지. 처음으로. 대체 뭐가 그렇게 서운한 건지.
생각해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냉장고 문을 열면 밝은 불빛이 켜지는 게 정말 신기하겠더라고. 전기세 문제를 아이가 심각하게 고민해봤을 리는 당연히 없을 테고 말이야.
게다가 냉장고 안 그릇에 담겨진 알록달록한 음식들 역시 신기한 볼거리였을 거 같아. 음식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아기 입장에서는 달나라에서 토끼 두마리가 떡방아를 찧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얘기였겠지.
그리고 냉장고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 그것만큼 신기한 게 있었을까? 더운 날씨에도 냉장고 문을 열면 마치 마법처럼 자기 몸을 감싸는 냉기는 정말 놀라웠을 거잖아.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갑자기 아이에게 미안해지더라고. 아빠의 거룩한 의무감은 사실 아빠 입장에서의 고집이었을 뿐 아이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불통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아이는 아빠한테도 이 재밌고 신기한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건데 아빠는 왜 바보처럼 자꾸 자기를 떼놓고 소리리치는 걸까 슬퍼했을 수도 있겠더라고.
그때 아기를 꼭 껴안고 이렇게 말했어. 진심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동은아. 아빠가 미안해. 동은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아빠가 자꾸 못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아빠도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아빠가 지금 너무 마음이 아파.”
그때 나도 약간 울먹였던 것 같아. 정말 미안했거든.
하지만 재밌는 건, 그때 이후로 아기는 더 이상 냉장고 문에 매달리지 않았다는 거야. 거짓말 같이.
어쩌면 근거 없는 감상일 수도 있고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인 걸 내가 미화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 솔직히 진실은 나도 몰라. 하지만 내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강력한 소통의 기억인 건 분명한 것 같아 소개하는 거야.
그 이후에도 아이는 그랬거든. 그러니까 뭔가 문제가 되는 행동일 경우(물론 아빠 입장에서). 아빠가 논리를 들이밀거나, 뇌물로 구워삶거나, 불같이 화를 낼 때 보다는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해 하거나 슬퍼할 때 자기의 행동을 멈췄다는 얘기야.
나의 옳음으로는 소통되지 않던 것들이 상대의 입장으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던 거지. 그러니까 나의 옳음은 종종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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